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 마문 (문단 편집) === 초기 생애와 4차 피트나 === 786년 9월 14일 [[바그다드]]에서 아바스 왕조 5대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와 이란 출신 여노예 마라질의 아들로 출생했다. 마라질이 출산 직후 사망하자, 하룬은 그를 정실 부인인 주바이다의 양자로 삼아서 주바이다의 아들 [[알 아민]]과 함께 양육하도록 했다. 이후 그는 알 아민과 함께 당대 최고의 가정교사로부터 교육받았다. 하룬은 혹여 두 아들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내전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사전에 조치를 취했다. 799년 일가족과 함께 [[메카]] 순례를 떠난 그는 [[카바]] 앞에서 알 마문을 알 아민의 뒤를 이을 두 번째 후계자로 지명했고, 또다른 아들인 알 카심을 세번째 후계자로 지명했다. 또한 자신이 죽으면 알 마문이 호라산 지방을 다스리고 알 아민은 나머지 지역을 다스리도록 했다. 그러던 809년 3월 24일 호라산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러 가던 하룬이 중병에 걸려 사망하자, 알 아민이 예정대로 칼리파에 등극했다. 하룬으로부터 알 아민의 보좌 임무를 맡은 알 파딜은 호라산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가져온 군인 급료를 바그다드로 돌려보내서 알 아민이 직접 군대에 사려금으로 지급하게 했다. 그는 알 파딜에게 하룬의 개인 유산을 자신에게 양도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알 파딜은 "지금은 때가 좋지 않다"며 거절했다. 이 일로 그의 미움을 사자, 알 파딜은 만약 그가 칼리파에 등극하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여기고 그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고자 음모를 꾸몄다. 알 아민은 처음에는 아버지가 카바 앞에서 한 서약을 준수하기로 하고, 그를 트란스옥시아나로 보내 그곳에 주둔한 군대를 이끌게 했다. 그러나 알 아민은 알 파딜의 참소를 듣고 그를 의심하여 정보국 관리를 메르브로 보내 그의 동태를 매일 알리게 했다. 이후 그에게 라이, 쿠미스, 타바리스탄 정부를 자신에게 넘기라고 지시하며, 해당 지역의 세금 수입은 호라산에 주둔한 군대를 지원하기에는 너무 적지만 바그다드에 주둔한 군대를 지원하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부하고 호라산에서 주조되는 동전에 칼리파의 이름을 생략하고 "알 이맘 알 후다(올바른 길)"이라는 문구를 추가하게 해, 메카에서 맺은 서약을 준수하라는 뜻을 공공연히 밝혔다. 이복형이 자신의 명령에 거부하자, 알 아민은 그의 왕위계승권을 박탈하고 아들 무사를 차기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는 이에 분노해 반란을 일으키고 이란 장군 타히르를 지휘관으로 삼았다. 타히르는 2만에서 2만 5천 가량의 병력을 이끌고 레이에서 토벌군 5만 명을 대파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장악한 영역에서 스스로 "무슬림의 지휘관이자 [[이맘]]"이라고 칭했다. 한편, 알 아민은 시리아에서 반란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접하자 아브드 알 말리크 이븐 살라흐를 그곳에 보내 질서를 회복하게 했다. 그러나 아브드 알 말리크는 반란군과의 전투 도중 전사했다. 이후 알 마문을 토벌하기 위해 아흐마드 이븐 마즈야드와 압둘라 이븐 후마이드를 보냈지만, 두 장군이 불화를 일으키고 서로 싸우면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알리 이븐 이사의 아들 후세인이 바그다드에서 반란을 일으켰을때, 바그다드 정규군은 방관했고 시민들이 민병대를 결성해 대신 진압했다. 이렇듯 알 아민이 군대의 신망을 잃고 위신이 땅에 떨어진 틈을 타, 그는 공세를 연이어 이어가 811년부터 813년까지 이라크 각지를 장악하고 812년부터 바그다드를 포위했다. 바그다드에 잔존한 알 아민 지지자들은 그의 군대에 속한 투르크인들이 많은 걸 보고 그들을 야만족으로 간주하며 1년간 완고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도시에 기근이 들면서 수비대는 차츰 기력이 쇠진했고, 813년 가을 알 마문의 병사들이 점차 바그다드의 여러 요충지를 공략했다. 게다가 감옥을 탈출한 죄수들이 거리 곳곳을 불태우며 난동을 부렸다. 결국 더 저항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알 아민은 협상을 시도했다. 알 아민이 칼리파의 홀, 인장 및 여러 상징물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자신을 사면해달라고 청하자, 그는 받아들였다. 그러나 알 아민은 리파의 상징물들을 선박에 싣고 티그리스 강을 통해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도중에 발각되어 체포된 뒤 곧 참수되어 안바르 성문에 며칠간 전시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4차 피트나를 마무리하고 새 칼리파로 등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